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추진하는 상장폐지 제도 개편을 두고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편의 핵심은 단순한 퇴출 강화가 아니라 자본시장이 기업에 요구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이제 기업의 과제는 상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회복해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최근 발표된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은 시가총액 기준 상향, 동전주 기준 신설, 공시의무 및 자본잠식 요건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과도한 규제로 평가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본다. 기업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현장에서 오랜 기간 부실기업 회생을 자문해 온 경험으로 보면 이번 개편은 규제를 강화한 정책이라기보다 시장이 기업에 보내는 분명한 신호에 가깝다.

그 신호는 명확하다. '상장사라는 지위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의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부 한계기업은 실적 개선보다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발행, 최대주주 변경, 테마성 신사업 발표 등을 반복하며 상장 유지를 경영 목표처럼 삼아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기업가치를 높이기보다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동전주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주가를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다. 주가가 1,000원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은 기업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배경에는 장기간의 영업손실, 악화된 현금흐름, 과도한 금융부채, 반복적인 CB·BW 발행, 잦은 최대주주 변경, 본업과 무관한 신사업 발표, 공시 신뢰도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누적돼 있다.
이러한 기업은 위기 국면에서 주식병합이나 감자 후 유상증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단기적으로 상장폐지 위험을 늦출 수는 있지만 영업이익과 현금창출력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같은 위기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조정 실무에서도 감자와 병합을 여러 차례 거친 뒤에야 근본적인 처방을 찾는 사례를 적지 않게 접한다. 그때는 이미 협상력과 시간, 남은 자산이 크게 줄어든 이후인 경우가 많다. 결국 주가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가치가 반영된 결과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회생의 출발점이다.
상장폐지 강화의 명암을 살펴본다. 이번 제도 개편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부실기업의 장기 잔류를 줄이고, 자본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이동하는 환경을 조성하며, 허위공시나 단기 주가부양 같은 시장 교란 행위에 대한 억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우려도 존재한다. 바이오, 플랫폼, 콘텐츠 기업처럼 초기 투자 부담이 큰 산업은 일시적인 시가총액 하락만으로 상장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투자심리 악화가 주가 하락을 부르고, 다시 상장폐지 위험을 키우는 자기실현적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번 개편은 퇴출 기준을 정교하게 만드는 정책이지 기업 회생까지 설계하는 정책은 아니다. 그 역할은 여전히 기업과 전문 자문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회생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상장폐지 위험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주가 방어보다 사업과 재무를 동시에 재설계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가 중요하다.
첫째, 재무상태와 차입구조, 현금흐름, 공시이력, 지배구조를 종합적으로 진단해야 한다.
둘째, 13주 단위 현금흐름을 관리해 유동성 위험을 예측해야 한다.
셋째, 수익사업과 적자사업을 구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한다.
넷째, 비핵심 자산을 전략적으로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만기 연장과 채무재조정 등을 포함한 금융구조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여섯째,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를 유치해 기업가치 회복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일곱째, 기업가치가 남아 있을 때 M&A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여덟째, 기업회생절차와 ARS, Pre-ARS, 워크아웃 등 법적 구조조정 제도를 조기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수단보다 실행 순서다. 충분한 진단 없이 투자유치나 M&A부터 추진하면 실패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퇴출 기준과 함께 회복 전략도 필요하다 해외 주요 시장은 이미 퇴출보다 회복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의 Chapter 11은 정상 영업을 유지하면서 채무를 조정하고 신규 투자 유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일본 역시 구조조정 전문기관과 민간 전문가를 연계해 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해 왔다.
공통점은 회생 가능성을 먼저 평가하고 기업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한다는 점이다. 우리 자본시장도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하는 만큼 조기경보 시스템, 구조조정 지원센터, 전문 구조조정 펀드, M&A 매칭 플랫폼, ARS 및 Pre-ARS 확대, 회생 가능 기업에 대한 조건부 개선기간 등 회복 인프라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상장폐지 강화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은 오래 버티는 기업이 아니다. 현금흐름을 개선하고 사업을 재편하며 재무구조를 정상화하고 전략적 투자와 M&A를 통해 기업가치를 다시 설계하는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정부가 퇴출 기준을 높였다면 기업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상장을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업가치를 회복해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되찾을 것인가"이다. 새로운 자본시장의 경쟁력은 상장 여부가 아니라 회복 능력에서 결정될 것이다.
(사)한국기업협회 윤병운 회장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이비즈타임즈에 있습니다]











